이번 영화제의 포문을 연 개막작은 <나의 가해자 추적기(My Sextortion Diary)>였습니다.

주인공 파티는 해외 출장 중 노트북을 도난당합니다. 현지 경찰에 도난 사실을 신고하고 귀국한 어느 날, 의문의 협박 메일을 받습니다. 돈을 보내지 않으면 파티의 사진을 지인들에게 유포하겠다는 협박이죠. 해당 메일에는 파티의 ‘보지(vagina)’ 사진 세 장이 첨부되어 있었습니다.

파티는 협박범의 메일에 답장하는 대신, 먼저 자국 경찰에 피해 사실을 알렸습니다.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자신을 사칭하는 메일을 열람하거나 답장하지 말라고 부탁했죠. 파티의 대응은 성 착취물 유포 협박 피해자에게 권장되는 지침을 그대로 따른 것입니다. 지침대로 했으니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니요, 그랬다면 이 영화는 탄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협박은 계속됩니다. 그러는 와중에도 앞서 파티가 노트북 도난 피해를 신고했던 해외 경찰은 묵묵부답이고, 자국 경찰에서도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합니다. 며칠 후 노트북 도난범 일행 중 일부를 확인했다는 연락을 받지만, 그들이 파티의 데이터를 해킹해 협박한 가해자가 맞는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파티가 협박범에게 대응하지 않을수록 협박의 수위는 높아지고, 마침내 가족에게까지 파티의 신체 사진이 유포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는 불특정 다수가 조회할 수 있는 클라우드에 사진을 공유하겠다는 협박까지 하자 파티는 다시 한번 경찰을 찾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나와 아내의 사진도 촬영해 달라”는 말로 파티의 피해 사실을 조롱합니다.

<나의 가해자 추적기>는 파트리시아 프랑케사 감독이 경험한 실화입니다. 감독은 성 착취 범죄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는 응당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사법당국에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의 벽을 마주했습니다. 외로웠고 불안했고 절망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그리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을, 동시에 비슷한 피해를 겪고 있는 여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직접 가해자를 추적하고 그 과정을 일일이 기록했습니다. 그 기록을 모으고 편집한 끝에 5년 만에 영화로 탄생시킨 것이 바로 <나의 가해자 추적기>이고요. 

영화가 끝난 뒤에는 감독과 관객이 직접 대화하는 프로그램, 피움톡톡이 이어졌습니다. 파트리시아 프랑케사 감독은 스페인에 거주하는 관계로, 스크린을 통해 인사할 수 있었는데요. 렛허가 특히 감명받았던 것은, 감독과 관객들이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멀리 떨어져 있는데도 아주 가까이, 하나로 연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입니다. 실제로 사회자가 객석에 마이크를 넘기자 “좋은 영화였다” “공감됐다” “용기 내 주셔서 감사하다”는 감상평이 줄지었어요.

‘웹하드 카르텔’ ‘N번방 사태’에 이어 최근 논란이 불거진 ‘딥페이크 성착취 범죄 유행’까지, 도무지 끊이지 않는 디지털 성범죄의 굴레에서 공포와 불안에 떨고 있는 한국 여성들에게는 <나의 가해자 추적기>가 마치 자기 일처럼 깊이 와 닿은 것이죠. 특히 한 관객은 <나의 가해자 추적기>를 통해 여성 대상의 디지털 성범죄가 반복되는 궁극적인 이유는 여성의 ‘몸’을 ‘수치스러운 것’으로 치부하는 인식에서 기반한 것이라는 점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감상평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파트리시아 프랑케사 감독은 “스페인과 서울은 굉장히 다른 곳인데도 이 영화의 메시지가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면서도 “나의 이슈들을 (공개적으로) 공유하기 시작했을 때 자신도 같은 피해를 보았다고 이야기해 주는 여성들이 있었다”고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면서 한국의 여성들에게도 “온라인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어디서든 우리가 보호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격렬한 투쟁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를 위해, 우리의 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서로를 격려해 주자”는 인사를 남겼답니다. 자, 그렇다면 파트리시아 프랑케사 감독의 가해자 추격기는 결국 성공으로 끝났을까요? 그가 고군분투한 결말은 영화로 확인하세요. <나의 가해자 추적기>는 오는 9월 28일과 29일에 추가 상영합니다.(상영일정 확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