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계 웰니스 시장이 주목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뇌 건강’입니다. 뇌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이기 때문이죠. 어쩌면 웰니스의 가장 기본은 우리의 뇌 건강을 돌아보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렛허와 여성의 뇌 건강에 대해 알아보아요.

INSIGHT

“여자는 감성적이고, 남자는 이성적이지”

“여자는 복잡하고, 남자는 단순해”

“여자는 남자보다 멀티태스킹에 능하고, 남자는 여자보다 수학을 잘한다더라”

이런 말들, 들어본 적 있나요? 사람들은 인간의 두뇌가 성별에 따라 다르게 타고나며, 이것이 ‘여성적’이거나 ‘남성적’이라고 부르는 성향을 결정한다고 믿어요. 여성과 남성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하는 연애지침서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에 오른 것만 봐도 이런 류의 주장이 얼마나 오랫동안 대중을 매혹했는지 알 수 있죠.

그렇다면 정말 여성과 남성의 뇌는 다를까요? 최근의 연구들은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지난해 국제 행동신경과학회 학술지인 <신경과학·생물행동 리뷰(Neuroscience and Biobehavioral Reviews)>에 게재된 미국 로잘린드프랭클린의과대학의 뇌과학자 리즈 엘리엇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의 뇌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엘리엇 박사의 연구팀이 지난 30년 간 이뤄진 성별 간 두뇌 차이를 다룬 연구에서 촬영한 뇌 영상 수백 개를 분석한 결과, 여성의 뇌와 남성의 뇌 사이에 분명한 차이를 꼽자면 크기 뿐인데(평균적으로 여성의 뇌가 남성보다 약 11% 작거든요) 이 마저도 두뇌의 기능 차이나 특정 영역의 발달과는 무관하다고요.

또 엘리엇 박사의 연구는 ‘여성의 대뇌 반구, 즉 좌뇌와 우뇌가 남성보다 더 많이 연결되어 있다’는 견해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는데요. 실제 성별 간 좌우 뇌 연결량의 차이는 1% 미만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에요. 성별 간 대뇌피질 내 특정 영역의 부피나 두께가 다르다고 보고된 연구들 역시 ‘영역의 차이’가 연구마다 다르게 나타나므로 이를 일반화할 수 없다고 보고요.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교의 신경생물학자 다프나 요엘도 자기공명영상(MRI)으로 여성과 남성 1400여 명의 두뇌를 수백 번 촬영해 비교 분석했는데, 이때 두 성별의 뇌는 다른 점보다 닮은 점이 더 많았어요. 또한 사회가 ‘여성적’ ‘남성적’이라고 규정하는 뇌 영역이 자기 생물학적 성별에 맞게 발달된 사람도 고작 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에 요엘 박사는 인간의 두뇌를 ‘모자이크 뇌’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요. 뇌를 구성하는 요소를 모자이크의 조각들로 비유하면, 사람마다 뇌를 구성하는 조각들의 비율이 모두 다르므로 완성되는 그림도 달라진다는 겁니다.

여성과 남성의 두뇌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면, 상대적으로 여성이 알츠하이머병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스트레스에 취약하다는 통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아쉽지만, 이 점은 학계에서도 아직 답을 찾아가는 단계입니다. 대신 여러 연구들을 종합해 보면 이런 추측을 해볼 수 있어요. 뇌 건강은 인간을 둘러싼 모든 내외부 환경에 영향을 받습니다. 특히 여성은 생리, 임신, 출산, 갱년기 등 특정 시기에 두드러지는 호르몬 변화, 즉 신체적 변화가 뇌 건강에 큰 변수로 작용하는 동시에 여성을 향한 사회 분위기, 직간접적인 경험 및 환경적인 요인도 뇌 건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거죠.

우울증을 예로 들면, 독일 만하임 하이델베르크대학교 임상심리학 및 심리치료학과 교수인 크리스티네 쿠에너는 2016년 <랜싯 정신의학(Lancet Psychiatry)>에 실은 논문에서 정치 참여의 기회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 생식권 등 사회적으로 만연한 성별 간 불평등이 여성과 남성의 우울증 차이로 이어진다고 밝혔어요. 세계적으로 강간, 강제적인 결혼이나 조혼 강요, 연인이나 배우자의 폭력, 생식기 할례와 같은 젠더 기반의 폭력 사례 피해자 대부분이 여자라는 사실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데요. 젠더 평등 지수가 낮은 곳에 사는 여성이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우울감을 느낀다는 연구 결과 등을 종합하면 ‘여성이 남성에 비해 우울증 발병률이 높다’는 통계를 뒷받침할 수도 있겠습니다.

물론 일생에 걸쳐 여성의 뇌가 생물학적으로 남성과 다르게 변화하는 경우도 분명 있습니다. 바로 임신과 출산 등의 신체 변화를 겪을 때예요. 2016년 <네이처 신경과학(Nature Neuroscience)>에 실린 엘젤리네 후크제마 연구팀의 논문을 보면 처음 임신한 여성의 뇌에서 임신 전에 비해 기억과 학습을 관장하는 해마의 부피가 줄어든 것이 발견됐어요. 다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실험에 참여한 여성들 중 둘째 아기를 임신하지 않은 여성의 뇌를 2년 후 재촬영하자 해마가 원래대로 복구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한편 전문가들에 따르면 임신한 여성의 뇌에서는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기도 하지만, 동시에 인지 능력을 높이는 에스트로겐 수치도 증가하므로 뇌 기능의 변화가 어느 정도 상쇄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신부의 75%는 임신 중 뇌 기능에 이상이 생겼다고 느낀다고 해요. 이와 관련해 <엄마의 뇌-우리를 훨씬 똑똑하게 만드는 엄마 되기>를 펴낸 저널리스트 캐서린 엘리슨은 임신부나 산모의 뇌 기능 저하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편견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저자는 ‘임신 건망증’이라는 용어 자체가 많은 여성이 사회 생활을 시작했을 시기인 1960년대 나타났으며, 당시 여자들이 직장에서 잠시 방심하거나 실수하면 이를 ‘임신 건망증’으로 치부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해요. 물론 임신과 출산을 겪은 후 좀처럼 상황에 집중하기가 힘들고 해야 할 일이나 말을 잊는 경험을 했다는 여성들의 증언이 전부 착각은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그 원인을 찾을 때 ‘엄마가 된 여성의 뇌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식의 고정관념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점이에요.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신체 변화, 체력 저하, 육아 과정에서 겪는 수면 부족, 스트레스 등 여성이 인지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환경적인 요인이 훨씬 많으니까 말이죠.